‘신장에 좋다던데요?’ 오해에서 비롯된 위험한 습관들
만성신부전 환자들의 식이요법은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치료의 한 축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통해 잘못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외래 상담에서 환자들이 하는 말 중에는 “이거는 천연이라 괜찮죠?”, “이건 TV에서 좋다고 했어요”와 같은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질문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러한 오해들은 치료 경과를 악화시키고, 때로는 투석 시점을 앞당길 수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임상영양사로서 자주 접했던 만성신부전 환자들의 대표적인 오해들을 짚어보며,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안내드립니다.
1. "천연 식품은 다 몸에 좋다"
많은 환자분들이 '천연'이라는 말만으로 식품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드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연산, 유기농, 무첨가라는 문구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신부전에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천연 해조류인 다시마나 미역은 칼륨과 요오드 함량이 매우 높아 오히려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민간요법으로 널리 알려진 한약재나 약초들도 검증되지 않은 성분으로 인해 신장 독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연에서 온 것’이라고 해서 몸에 해가 없다는 인식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임상 현장에서는 이러한 오해로 식단을 망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꼭 성분과 기능을 확인하고, 전문가와 상의 후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2. "단백질을 무조건 많이 줄여야 한다"
신장 질환 환자에게 단백질 조절이 중요하다는 말은 맞지만, 과도한 제한은 오히려 영양불량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 환자들은 근육 손실이 빠르기 때문에 단백질 섭취를 무작정 줄일 경우, 일상 기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실제 외래에서 “고기를 1주일에 한 번도 안 먹어요”라고 말하는 환자분이 체중과 근력이 급감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또한 투석 시작 이후에는 단백질 요구량이 오히려 늘어나기 때문에, 그 시기 변화에 따라 섭취 전략을 조절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제한보다, 체중, 근육량, 단백질 수치 등을 고려한 ‘맞춤형 식이요법’이 중요합니다.
3. "과일은 건강식이니까 괜찮다"
과일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만성신부전 환자에게는 주의가 필요한 식품군입니다. 특히 칼륨 함량이 높은 과일은 고칼륨혈증을 유발해 심장 박동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위험합니다.
환자분 중에는 “바나나랑 오렌지 주스가 건강에 좋다길래 매일 먹었어요”라고 말씀하신 경우가 있었는데, 혈중 칼륨 수치가 급격히 상승해 응급실로 이송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과일을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과나 포도, 복숭아처럼 비교적 칼륨이 낮은 과일을 하루 한 번 소량만 섭취하는 방식이 바람직합니다. 껍질 제거, 삶기 등의 조리법으로 칼륨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4. "물을 많이 마시면 신장이 좋아진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충분한 수분 섭취가 좋지만, 만성신부전 환자에게는 수분 대사 능력이 저하되어 체내 수분 정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배뇨량이 감소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수분을 많이 마시면, 부종, 고혈압, 심한 경우 폐부종까지 유발될 수 있습니다.
외래에서는 “물을 2리터 마시면 독소가 빠질 줄 알았어요”라는 환자도 있었지만, 오히려 입원 치료가 필요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수분 섭취량은 체중, 소변량, 전해질 수치 등을 기준으로 조절해야 하며, 특히 여름철이나 활동량이 많은 날에도 자의적으로 늘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개인 상태에 따라 수분 제한량이 다르므로 반드시 상담을 통해 조절해야 합니다.
5. "투석하기 전까진 식이요법이 필요 없다"
신기능이 감소하고 있는 단계부터 식이조절을 시작하는 것이 투석 시점을 늦추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환자들은 “아직 투석 안 하니까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죠?”라고 말하며 식이요법의 중요성을 간과합니다.
실제로 진단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본인의 상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식단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꾸준한 식이조절을 통해 신장 손상 속도를 늦추고, 합병증 발생을 줄이며,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질병 초기에 식습관을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치료이자 예방입니다. 식이요법은 투석 후가 아니라, 그 전에 반드시 시작해야 합니다.
결론: 정확한 정보와 전문 상담이 최고의 ‘치료’입니다
만성신부전 환자에게 있어 식사는 단순한 영양 섭취가 아니라 질병 진행을 조절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다양한 오해로 인해 잘못된 식습관을 형성하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와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본인의 상태에 맞는 식이요법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임상영양사로서 환자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는 만큼 지킬 수 있고, 지킨 만큼 늦출 수 있습니다.” 질환과 싸우는 가장 큰 무기는 ‘정보’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태도’입니다.


